[달리기 4일차] 의욕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순 없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미세먼지 어플을 켰다. 아쉽게도 오늘은 ‘상당히 나쁨’수준이었다. ‘나쁨’정도만 되도 달리러 나가고 싶었는데.. 보통 미세먼지가 안좋은 날 러너들은 헬스장 런닝머신으로 운동을 대체한다고 한다. NRC에도 보니 실내 런닝머신 운동이란 토글키가 따로 존재했다. 하지만 며칠 전, 실내 체육시설 또한 정부의 권고에 따라 2주간 휴관한다는 안내문자를 받은 터라 그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장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냥 나갈까? 달리기일지도 써야하는데;;’
결국 달리기일지를 써야하는 데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달리는 것에 목적이 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에 급급해 원래의 목적인 ‘건강’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때로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리기일지만큼은 나에게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돌보는데 중점을 두고 싶었다.
달리러 나가지 않은 아침
그렇게 달리지 않기로 하니 아침 시간이 어제보다 여유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오늘은 컨디션이 꽤 좋았는데 달리러 가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홈트를 위해 몇 가지 영상을 찾아봤다. 이왕이면 달리기에 도움이 되는 근육들을 정비하는 시간을 갖고자 “Workout for runner”라는 검색어로 영상들을 찾아봤다. 준비운동 영상들이 많았는데 더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점심시간 20분 정도 가볍게 요가로 몸을 풀어주고, 복근 운동을 시작했지만 근육이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 이미 처음 몇 가지 동작도 버거웠다. 😫👵 으.. 저녁 때는 대기질이 좀 좋아지려나?
오후 6시, 미세먼지 나쁨
업무를 하는 중에 슬쩍 시간 대별 미세먼지 추이를 확인했다. 오후 5시즈음부터 나쁨 수준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잘 하면 퇴근 후 바로 달릴 수 있겠다!
업무 시간이 종료되자 마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재택근무라고는 하지만 별탈없이 칼퇴를 할 수 있어 어찌나 기쁘던지! 밖에 날씨는 선선했고, 저녁 공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나를 반겼다. 나는 사실 올빼미형 인간이다. 🦉 아침형 인간과 반대되는 사람. 아침에는 눈뜨기 어렵고, 밤 동안 깨어 감성에 젖어드는 그 시간을 사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도 저녁 때 하고싶다. 다만, 저녁에 운동을 하면 잠을 잘 못자기 때문에..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은 필수라고 여겨져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퇴근 시간 달리기’로 살짝 바꿔볼까 고민을 했지만.. 일단 가급적 출근시간에 달려보려고 한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은 모르겠는데..
집 근처에 잘 조성된 공원이 하나 있다. 이 공원의 테두리를 한 바퀴 크게 돌면 약 1.3km이다. 지금까지는 두 바퀴 정도 달렸는데 오늘은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바퀴 째에 도전했다. 중간에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낮춰 걸으며 페이스를 조절했지만, 세 바퀴 째에 접어드니 숨이 가빠지고 윗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컨디션도 좋고 조금 더 달려보고 싶은데..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가 얼굴이 급격히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빨개지는 원인 중에 산소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도 있는 모양이다. 거의 걷는 모양새로 속도를 낮췄고 오늘은 이만 달리기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음? 근데 어느 길로 가야지? (두리번 두리번)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루트가 아닌 다른 길은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
짧지만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차분히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니 길은 다양했다. 조금 더 걸어가서 육교 밑으로 가로 질러 가는 길, 큰 입구는 아니지만 작은 샛길로 가로 질러 가는 길 등.. 꼭 계획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다양했다.
마음먹은 대로 가기 힘들어 질 때 중간에 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조금 신기했다.
내가 내 삶도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힘들어질 때 돌아가거나 질러가는 대신 어떻게든 목표한 곳까지 자기 페이스를 잃어가며 끌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도리어 목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더이상 갈 수 없을 만큼 지쳐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 계획했던 일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살아진다.
의욕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순 없어. 약간의 스킬이 필요하지.
달리기의 장점은 달리는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결론이 대부분 긍정적이라는 데 있다. 만약 혼자 집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면 한없이 우울해질 수도 있는데 달리다 보니 이 세상에 옵션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갈 수 있고 그게 실패는 아니라는 것. 그냥 오늘 난, 여기까지만 하고 싶을 뿐.
의욕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된다. 하지만 의욕만 앞서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곳을 바라보며 가능한 많은 플랜을 세워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이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정답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그나저나 혹시 저녁 때 달려서 잠 안오는 거 아니야? 내일 아침에 달릴 수 있을까? 😅
오늘의 달리기일지
1. 아침에 못달리면 저녁에 달려보기. (단, 아침에 나가지 않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2. 속도, 거리와 같은 목표보다는 내 몸을 돌보며 달리기
3. 내 인생의 옵션을 생각해두기
오늘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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